'2008/07'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7.17 생일축하한다. 내 동거인이었던 사람. 3
  2. 2008.07.14 모방범과 낙원 2
728x90
20 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너와 함께 살게 된, 꽤 힘들었던 그리고 외롭지 않았던 시간. 생각한다. 나보다 무려 2 년이나 먼저 이 곳에 터를 잡고 있던 네게 나는 불청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거라고. 말을 시작한 지 십수개월이 지나 네가 다른 아이보다 먼저 배워야 하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동생 이라는 단어였을 것이다. 남-적어도 동생이 없는 아이-보다 한단어를 앞서갈 수 있었던 너는 필히 나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남-적어도 형이나 오빠, 누나나 언니가 있는 아이-이 아는 단어를 네가 먼저 몰랐다고 날 원망할 순 없다. 그래도 굳이 내 탓으로 돌리고 싶다면 어쩔 수 없이 미안해 하겠다.

스물여섯 해가 지나도록 네게 변변찮은 편지 한통 못써준 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남매라는 한 묶음으로 살아야 하는 모든 남성들의 문제-그것도 매우 심각한 수준-일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대해 한마디 불평이라도 하고 싶다면  "매(妹)의 날" 이 없음에 대해 대한민국을 원망해라.

이 편지를 쓰는게 네가 태어난 기념일 즈음 이라는 것이 결코 의도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이 글에 그 날을 축하 하는 마음도 담겨있음을 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으리라.
이제 곧 9자가 되는 네 이십대의 슬픈 날이 걱정되면서도, 아직 '만' 으로는 스물일곱이라 스스로 위로할 널 생각하니 네가 너무 안스러워 창밖의 전경색이 검은색에서 푸른색이 될 때까지의 내 새벽 시간을 네게 양보한다.


우리 둘의 관계는 매우 어색하다. 이것은 "친함에의 어색함" 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국민학교 시절 즈음 남자둘을 형제라 부르고, 여자 둘은 자매라 부르는데 남자여자 둘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그냥 형제라 불렀던 그 때 처럼, 남매라는 단어는 내게 생소하다. 심지어 "형제자매" 라는 단어가 국어 사전에 버젓이 등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국어사전 어디에도 형제남매, 자매남매 그리고 형제자매남매 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남매' 라는 "형제자매에 낄 수 없는", 동떨어지고 이질적인 단어만 존재할 뿐이고, 이 단어마저 "오빠와 누이-남동생과 누이가 아닌-를 아울러 이르는 말" 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공인 받지 못한 이런 어색한 사이에서 이제는 서로가 존재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져 마치 내 손처럼, 있지만 인식하지 못하는 그런 관계가 되어버렸다. 길을 걷다 갑작스레 넘어져 나도 모르게 손으로 땅을 내짚고는, 손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처럼, 어느 순간 네 존재를 인식할 때가 있다. 이렇듯 우리 둘의 관계는 매우 어색하다.


착취의 대상이었다. 말도안되는 고리대금으로 네게 돈을 빌려주었을 때는 그 몇 배의 돈을 강탈해 갔다. 그러나 "나중에 몇 배로 갚겠다." 하며 네게서 돈을 빌리고 내가 그 돈을 갚지 않았을 때, 네가 한 일이라고는 고작 어머니에게 일러바친 일 뿐이라는 것을 아직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 또한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결제 계좌가 네 통장으로 연결된 신용카드를 긁고 매번 사인하면서 승인 기록이 떨어질 때마다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며 네게 감사하고 있음을.


손을 잡지 않았다. 너와 내가-어쩌면 나만-매우 전투적이었던 그 때, 전쟁 중인 두 사람이 둘이 손을 잡는 다는 것의 의미는 휴전 그 이상 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마치 김일성이 죽고 '이제 통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국민학교 3학년의 시각에서 바라본 남북한의 관계와 같았다. 나와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했던 한 남자아이가 누나의 손을 잡고 길거리를 활보할 때 느꼈던 배신감은, 김일성이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통일이 되지 않았던 그 시절 이 사회에 느꼈던 배신감보다 훨씬 컸다. 그래서 난 더욱 네 손을 잡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남매라 생각했다. 우리는.
지극히 평범하게 싸우고,
지극히 평범하게 화해하고,
지극히 평범하게 서로를 생각하고,
지극히 평범하게 서로를 무시한다.
물론 아직도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남매라 생각한다. 우리를.

이렇듯, 착취의 대상이었고, 어쩌면 조금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그리고 매우 어색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무심한듯 시크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생일축하한다.

'Deep'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의 물김치는 너무 맛있다.  (2) 2010.07.25
두가지 일.  (2) 2008.12.01
경계심과의 충분한 협상  (8) 2007.12.07
어떤 하루  (0) 2007.10.13
미술, 요리, 번역. 그리고 결혼  (11) 2007.10.01
Posted by onionmen

2008. 7. 14. 15:56 Review/Book

모방범과 낙원

728x90

막상 뭔가를 쓰려고 Live Writer 를 켰는데, "게시물 제목 입력" 이라는 글을 보고 있으니 순간 멍해지면서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조차 망설여 지게 된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사실 어떤 이유보다도 이 "기억나지 않음" 이라는 이유가 글쓰기를 힘들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 아닐까.


모방범 2 상세보기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문학동네 펴냄
<화차>, <이유>, <용은 잠들다>의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소설. 탄탄한 구성력과 날카로운 인간상의 표현력, 흡입력 있는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원한이나 물욕과는 무관한, '이유 없는 범죄'를 다루고 있으며, 2002년 일본에서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도쿄의 한 공원에서 쓰레기통에 버려진 여자의 오른팔과 핸드백이 발견된다. 핸드백의 주인은 삼 개월 전에 실종된 후루카와 마리코라는

1. 모방범 (1,2,3)

"모방범" 이라는 소설을 본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꽤 오래 흘렀지만 그래도 기억하는 한가지 감정이 있다. 대단했다. 잘짜여진 스토리에 숨돌릴 틈없이 이어지는 사건전개를 통해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뭐든 처음이 어렵다는 말은 이 책을 통해 실감할 수 있다. 진짜 처음 페이지를 열기가 힘들다. 이 책의 분량을 보면. 지레 겁을 먹고 시작을 안하게 된다. 하지만 용기를 내 펼치고, 1600페이지를 넘기고 마지막 마침표를 본 뒤에 밀려오는 감정은 후련함 보다는 찝찝한 미련이었다. 분명 끝을 맺긴 했는데, 뭔가 허전한 이런 찝찝한 마음을 갖고 책을 덮었다.


그래도 대단한 책 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난 언제나 뒤통수를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었고, 읽는 도중에 느끼는 두근거림과 결말에 다다를 때의 짜릿한 쾌감을 위해 기꺼이 내 잠자는 시간을 포기할 수 있었다. 이런 내게 결말을 미리 알고 보는 추리소설은 시시했다. 전혀 자극이 없었다. 이 미미여사의 모방범은 1/3이 채 지나기도 전에 진범을 알려준다. 우리는 범인도 알고있고 거기다 트릭도 없다. 하지만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자극적이었다. 전혀 시시하지 않았다.

범인을 보여주고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1권을 읽고 나면 더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비슷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2권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소설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고로 평가하는 3권을 볼 수 있게 된다.


마지막 장을 읽고 나면 진짜 내용이 펼쳐지는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모방범은 쉽지않은 소설이지만 절대 거부할 수 없다. 때문에 잘 기억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추천할 만 하다.



낙원. 1 상세보기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문학동네 펴냄
<모방범> 이후 9년, 한 가족을 무너뜨린 비극이 시작된다! 일본 추리소설의 여왕 미야베 미유키의 장편소설『낙원』제1권.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 <모방범>의 등장인물인 르포라이터 마에하타 시게코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또다른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은 작가의 뛰어난 묘사력과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인간의 이면과 현대사회의 모순을 심도 있게 파헤친다. '모방범' 사건으로부

2. 낙원 (1,2)

미미여사의 신간이 한글로 변역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구매하였다. "낙원" 이라는 제목의 소설은 날 찝찝한 마음으로 만들었던 바로 그 소설, 모방범. 이건 그 9년 뒤의 이야기 이다. 모방범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재미있다. 요즘 부쩍 책읽는 시간이 줄었는데, 이 책은 어떻게 해서든 짬을 내서 읽었다. 사실 모방범에 대한 이야기가 살짝 언급되긴 하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로 봐도 무방하다. 아니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내심 모방범의 그 살인마가 저지르는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살짝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았다.) 때문에 모방범을 굳이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죽인 친딸을 16년간 마루밑에 묻어놓고 함께 살아온 가족에 대한 이야기. 이 가족에겐 어떤 일이 있었을까.

물론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 모방범 1권을 중간까지 읽었는데도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안맞다고 생각된다면 1권 나머지부분과 2,3권 그리고 낙원 1,2권을 굳이 권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모방범을 끝까지 읽었다면 다른 책을 손에 잡지 말고 이 낙원을 읽기를 추천한다. 2500페이지도 그리 많은게 아니라는걸 알게 되는 쉽지않은 기회일테니까.


덧. 사회 전반적인 문제점을 은유적으로 지적하는 미야베의 소설은 날카롭다. 하지만 소설이 연재되기 시작 할 때 즈음해서 일본에선 이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미야베 미유키는 이 소설을 썼고, 이는 그 사건 관련자들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이 사실이 팬으로써 조금 안타깝게 생각된다.

Posted by onionmen
이전버튼 1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손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고 싶은 애인이 있습니다.
onionmen

달력

 « |  » 2008.7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DNS Powered by DNSEver.com

최근에 올라온 글

Yesterday
Today
To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