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 7. 01:05 Deep
경계심과의 충분한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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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정차역은 하늘역
지레 겁먹는다는 것 일까? 쉬고있다고 생각되는 어떤 조류를 촬영하기 위해 다가갔다. 여기저기 걸어다니는 날지못하는 비둘기들, 시청앞 광장에 뒤뚱뒤뚱 걸어다니는 닭둘기들과는 다른 부류였다. 조금 가까이 다가가니 역시나 바로 날개짓을 하고 하늘로 날아 오른다.
다치게 하려는 마음은 없었고, 그저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사진 한장을 찍고 싶었던 것인데. 날아올라버렸다. 가까이 다가오는 무언가가 무서운 것일까? 그저 혼자 있고 싶었던 것일까. 지레 겁을 집어먹는 것을 보면서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새가 날아오른 이유도 모르면서 동질감이 느껴지다니 참 우습다.
사람의 마음은 충분히 위협적이다. 전부 까뒤집어 보여 줄 수 없고, 설사 까뒤집어 보여준다고 해도 그 것을 제대로 알아 볼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겐 없기 때문에, 다가오는 마음에 대해서 처음에는 무조건 경계심을 갖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 경계심과 충분한 협상을 진행 할 필요가 있는데, 이 협상의 진행 결과에 따라서 자신에게 돌아올 상처의 크기가 결정된다. 지레 겁을 집어먹은 사람의 경우 협상은 결렬된다. 협상 하지 않는 대신 잃는 것도 없다. 한번 크게 잃어봤던 사람들이 보통 이런 결정을 많이 내린다.
저기 저 날아오른 새도 그랬을까? 무언가를 크게 잃어봤던 것일까? 겁 이라는 것이 유전적으로 그저 되물림 되었던 것일까.
뭐가 그렇게 급하고, 무서워서 스스로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도마뱀처럼 자신의 깃털을 날리고 날아갔을까.
부드러운 깃털에 베어져 있을 "겁"이 옮을까 두려워 집어 올리기 무섭다. 이런 날 생각하니 지레 겁을 집어먹은 건 오히려 나구나. 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난 상처 받을 각오를 할 테니, 넌 꼭 날 즐겁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 줘야 해."라는 타협보다는, 상처 따위 안 줄 것이라는 믿음. '사람과의 협상은 타협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믿음일지도 모르겠다. 단어로만 놓고 봐도 '타협' 보다는 '믿음' 이 훨씬 들리기도 좋고, 마음을 포장하는데도 도움이 되니 그냥 믿음이라고 생각해버리자.
혼자 걷는 공원은 쓸쓸하지만,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좋다. 새로 산 옷을 자랑하고 싶은데, 마땅히 어디 자랑할 사람이 없을 때, 난 그냥 외출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새로 산 옷인지 알 리도 없고 상관도 안 하겠지만, 옷장에 걸어두면 새 옷에 쓸쓸함이 전염된다.
"난 상처 받을 각오를 할 테니, 넌 꼭 날 즐겁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 줘야 해."라는 타협보다는, 상처 따위 안 줄 것이라는 믿음. '사람과의 협상은 타협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믿음일지도 모르겠다. 단어로만 놓고 봐도 '타협' 보다는 '믿음' 이 훨씬 들리기도 좋고, 마음을 포장하는데도 도움이 되니 그냥 믿음이라고 생각해버리자.
혼자 걷는 공원은 쓸쓸하지만,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좋다. 새로 산 옷을 자랑하고 싶은데, 마땅히 어디 자랑할 사람이 없을 때, 난 그냥 외출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새로 산 옷인지 알 리도 없고 상관도 안 하겠지만, 옷장에 걸어두면 새 옷에 쓸쓸함이 전염된다.
적어도 산 날에는 한번 바깥바람을 쐬어 주어야 좀 면역이 생긴다. 코트를 입기엔 좀 더운 날씨임에도 꿋꿋이 벗지 않고 버텨본다. 그리고 하늘공원으로 향하는 마지막 계단을 오르고 나서야 코트를 벗는다.
갑작스러운 한기에 몸이 떨리지만, 어렵게 벗어서 고이고이 접어놓은 코트를 굳이 다시 펼쳐서 입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산책하면서 조금 전 감상한 베토벤의 이야기를 되씹어본다. 머릿속에 남은 것은 '9번 교향곡은 굉장한 곡이구나.'라는 생각뿐이었지만.
쓰레기 매립장 꼭대기에서 본 노을은 아름다웠다. 하늘과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보는 붉은 노을은 배고픔도 잊게 하고 날 좀 더 이곳에 잡아두었다. 하늘과 노을 사이엔 경계심이 없다. 이들 앞 가로등에 켜진 불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낸 아르바이트생은 5분여간 커피의 주인을 찾았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당연하다. 주인이 없으니, 아르바이트생이 찾는 커피의 주인은 우유를 주문했으니까.
갑작스러운 한기에 몸이 떨리지만, 어렵게 벗어서 고이고이 접어놓은 코트를 굳이 다시 펼쳐서 입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산책하면서 조금 전 감상한 베토벤의 이야기를 되씹어본다. 머릿속에 남은 것은 '9번 교향곡은 굉장한 곡이구나.'라는 생각뿐이었지만.
쓰레기 매립장 꼭대기에서 본 노을은 아름다웠다. 하늘과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보는 붉은 노을은 배고픔도 잊게 하고 날 좀 더 이곳에 잡아두었다. 하늘과 노을 사이엔 경계심이 없다. 이들 앞 가로등에 켜진 불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낸 아르바이트생은 5분여간 커피의 주인을 찾았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당연하다. 주인이 없으니, 아르바이트생이 찾는 커피의 주인은 우유를 주문했으니까.
아르바이트 학생의 실수로 더욱 고파진 배를 달래려 샌드위치를 보란 듯이 우적우적 씹어먹는다. 우유와 빵. 이처럼 잘 어울리는 커플이 있을까. 조금 퍽퍽하다 싶을 때 한잔 들이키면 부드럽게 빵을 녹여준다.
아니 빵이 우유를 흡수한다는 것이 맞겠다. 우유의 맛을 없애주는 것 또한 빵이다.
아니 입안의 우유를 빵이 흡수한다는 것이 맞겠다. 우유는 반항 없이 자연스럽게 흡수된다.
그리고 결국엔, 빵을 정복한다. 빵은 우유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다시는 본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빵 섞인 우유 또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들 사이엔 역시 경계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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