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17. 15:40 Deep
생일축하한다. 내 동거인이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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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너와 함께 살게 된, 꽤 힘들었던 그리고 외롭지 않았던 시간. 생각한다. 나보다 무려 2 년이나 먼저 이 곳에 터를 잡고 있던 네게 나는 불청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거라고. 말을 시작한 지 십수개월이 지나 네가 다른 아이보다 먼저 배워야 하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동생 이라는 단어였을 것이다. 남-적어도 동생이 없는 아이-보다 한단어를 앞서갈 수 있었던 너는 필히 나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남-적어도 형이나 오빠, 누나나 언니가 있는 아이-이 아는 단어를 네가 먼저 몰랐다고 날 원망할 순 없다. 그래도 굳이 내 탓으로 돌리고 싶다면 어쩔 수 없이 미안해 하겠다.
스물여섯 해가 지나도록 네게 변변찮은 편지 한통 못써준 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남매라는 한 묶음으로 살아야 하는 모든 남성들의 문제-그것도 매우 심각한 수준-일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대해 한마디 불평이라도 하고 싶다면 "매(妹)의 날" 이 없음에 대해 대한민국을 원망해라.
이 편지를 쓰는게 네가 태어난 기념일 즈음 이라는 것이 결코 의도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이 글에 그 날을 축하 하는 마음도 담겨있음을 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으리라.
이제 곧 9자가 되는 네 이십대의 슬픈 날이 걱정되면서도, 아직 '만' 으로는 스물일곱이라 스스로 위로할 널 생각하니 네가 너무 안스러워 창밖의 전경색이 검은색에서 푸른색이 될 때까지의 내 새벽 시간을 네게 양보한다.
우리 둘의 관계는 매우 어색하다. 이것은 "친함에의 어색함" 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국민학교 시절 즈음 남자둘을 형제라 부르고, 여자 둘은 자매라 부르는데 남자여자 둘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그냥 형제라 불렀던 그 때 처럼, 남매라는 단어는 내게 생소하다. 심지어 "형제자매" 라는 단어가 국어 사전에 버젓이 등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국어사전 어디에도 형제남매, 자매남매 그리고 형제자매남매 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남매' 라는 "형제자매에 낄 수 없는", 동떨어지고 이질적인 단어만 존재할 뿐이고, 이 단어마저 "오빠와 누이-남동생과 누이가 아닌-를 아울러 이르는 말" 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공인 받지 못한 이런 어색한 사이에서 이제는 서로가 존재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져 마치 내 손처럼, 있지만 인식하지 못하는 그런 관계가 되어버렸다. 길을 걷다 갑작스레 넘어져 나도 모르게 손으로 땅을 내짚고는, 손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처럼, 어느 순간 네 존재를 인식할 때가 있다. 이렇듯 우리 둘의 관계는 매우 어색하다.
착취의 대상이었다. 말도안되는 고리대금으로 네게 돈을 빌려주었을 때는 그 몇 배의 돈을 강탈해 갔다. 그러나 "나중에 몇 배로 갚겠다." 하며 네게서 돈을 빌리고 내가 그 돈을 갚지 않았을 때, 네가 한 일이라고는 고작 어머니에게 일러바친 일 뿐이라는 것을 아직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 또한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결제 계좌가 네 통장으로 연결된 신용카드를 긁고 매번 사인하면서 승인 기록이 떨어질 때마다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며 네게 감사하고 있음을.
손을 잡지 않았다. 너와 내가-어쩌면 나만-매우 전투적이었던 그 때, 전쟁 중인 두 사람이 둘이 손을 잡는 다는 것의 의미는 휴전 그 이상 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마치 김일성이 죽고 '이제 통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국민학교 3학년의 시각에서 바라본 남북한의 관계와 같았다. 나와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했던 한 남자아이가 누나의 손을 잡고 길거리를 활보할 때 느꼈던 배신감은, 김일성이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통일이 되지 않았던 그 시절 이 사회에 느꼈던 배신감보다 훨씬 컸다. 그래서 난 더욱 네 손을 잡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남매라 생각했다. 우리는.
지극히 평범하게 싸우고,
지극히 평범하게 화해하고,
지극히 평범하게 서로를 생각하고,
지극히 평범하게 서로를 무시한다.
물론 아직도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남매라 생각한다. 우리를.
이렇듯, 착취의 대상이었고, 어쩌면 조금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그리고 매우 어색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무심한듯 시크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생일축하한다.
스물여섯 해가 지나도록 네게 변변찮은 편지 한통 못써준 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남매라는 한 묶음으로 살아야 하는 모든 남성들의 문제-그것도 매우 심각한 수준-일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대해 한마디 불평이라도 하고 싶다면 "매(妹)의 날" 이 없음에 대해 대한민국을 원망해라.
이 편지를 쓰는게 네가 태어난 기념일 즈음 이라는 것이 결코 의도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이 글에 그 날을 축하 하는 마음도 담겨있음을 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으리라.
이제 곧 9자가 되는 네 이십대의 슬픈 날이 걱정되면서도, 아직 '만' 으로는 스물일곱이라 스스로 위로할 널 생각하니 네가 너무 안스러워 창밖의 전경색이 검은색에서 푸른색이 될 때까지의 내 새벽 시간을 네게 양보한다.
우리 둘의 관계는 매우 어색하다. 이것은 "친함에의 어색함" 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국민학교 시절 즈음 남자둘을 형제라 부르고, 여자 둘은 자매라 부르는데 남자여자 둘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그냥 형제라 불렀던 그 때 처럼, 남매라는 단어는 내게 생소하다. 심지어 "형제자매" 라는 단어가 국어 사전에 버젓이 등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국어사전 어디에도 형제남매, 자매남매 그리고 형제자매남매 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남매' 라는 "형제자매에 낄 수 없는", 동떨어지고 이질적인 단어만 존재할 뿐이고, 이 단어마저 "오빠와 누이-남동생과 누이가 아닌-를 아울러 이르는 말" 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공인 받지 못한 이런 어색한 사이에서 이제는 서로가 존재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져 마치 내 손처럼, 있지만 인식하지 못하는 그런 관계가 되어버렸다. 길을 걷다 갑작스레 넘어져 나도 모르게 손으로 땅을 내짚고는, 손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처럼, 어느 순간 네 존재를 인식할 때가 있다. 이렇듯 우리 둘의 관계는 매우 어색하다.
착취의 대상이었다. 말도안되는 고리대금으로 네게 돈을 빌려주었을 때는 그 몇 배의 돈을 강탈해 갔다. 그러나 "나중에 몇 배로 갚겠다." 하며 네게서 돈을 빌리고 내가 그 돈을 갚지 않았을 때, 네가 한 일이라고는 고작 어머니에게 일러바친 일 뿐이라는 것을 아직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 또한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결제 계좌가 네 통장으로 연결된 신용카드를 긁고 매번 사인하면서 승인 기록이 떨어질 때마다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며 네게 감사하고 있음을.
손을 잡지 않았다. 너와 내가-어쩌면 나만-매우 전투적이었던 그 때, 전쟁 중인 두 사람이 둘이 손을 잡는 다는 것의 의미는 휴전 그 이상 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마치 김일성이 죽고 '이제 통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국민학교 3학년의 시각에서 바라본 남북한의 관계와 같았다. 나와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했던 한 남자아이가 누나의 손을 잡고 길거리를 활보할 때 느꼈던 배신감은, 김일성이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통일이 되지 않았던 그 시절 이 사회에 느꼈던 배신감보다 훨씬 컸다. 그래서 난 더욱 네 손을 잡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남매라 생각했다. 우리는.
지극히 평범하게 싸우고,
지극히 평범하게 화해하고,
지극히 평범하게 서로를 생각하고,
지극히 평범하게 서로를 무시한다.
물론 아직도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남매라 생각한다. 우리를.
이렇듯, 착취의 대상이었고, 어쩌면 조금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그리고 매우 어색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무심한듯 시크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생일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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