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6. 11:15 Review/Movie/Play/Music
당신에게 내 모습이 보입니까? - 어둠속의 대화
0.
"에이 설마.. 아무리 어두워도 익숙해지면 윤곽이라도 보이기
마련인데, 진짜로 아무것도 안보이겠어?"
입에서 나온 저 한 줄 문장은 어둠의 아가리 속으로 내 몸통이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 제 입 속을 찾아 들어갔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 여기서 그 칠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서야 진정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1. 어둠과의 대화
어둠을 이야기 하면, 무엇이 생각나냐 라고 묻는다. 이럴 때 단연 말 할 수 있는 것은 "한치 앞이고, 인생이다." 그냥 깜깜할 뿐이다.
놀거리 없던 내 어린 시절. 수건 한 장과 친구들 두세 명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눈감고 찾기 라는 놀이. 그 놀이의 박수소리를 생각나게 하는 가이드 분의 박수소리. 시각을 지운 이런 전시가 내 어릴 적 동심을 기억나게 해줄 수도 있구나.
그저 고맙다.
이번 '대화' 를 통해서 내 근거리 지각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너무나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굳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고쳐 다시 평가 내리자면.
"이번 '대화' 를 통해서 형편 없는 내 근거리 지각 능력을 알게 되었다."
시각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모습이라니. 그저 우울했다. 나에게도 육감(six sense)이라는 것이 있어서 "I can see dead people" 을 외치며 부들부들 떨 수 있다면, 이 우울함이 좀 사라질까?
촉각적인 내 시각을 잠시 몸에서 잠재우고, 4감각들을 사용한 어둠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내 몸에서 내 시각이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갖고 있었는지 새삼 실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왼쪽을 만져보세요." 라는 가이드 분의 말을 듣고 뻗은 내 왼손에 만져진 것은 죄송하게도 어떤 분의 어깨였다. 몸통을 돌려 왼쪽을 만져야 하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단지 내 상황판단능력의 문제일까?
2. 시선의 폭력
힘을 가진 자는 그 힘을 잘 사용해야 한다. "슈퍼맨이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아니, 굳이 상상 속의 인물로 한정할 필요도 없다. "부시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얘는 이미 많이 나쁜 아이지만, 그냥 대놓고 나쁜 아이가 된다면 이라고 상상해보자.)으로 정정하도록 하자." 그렇게 되면 세계 여러나라가 쌀나라의 속국이 되어, "부시 만세" 를 외쳐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될지 모른다.
이만큼은 아니더라도 시선의 힘은 대단하다. 위아래로 훑어보는 행위 하나만으로도 상대방에게 굉장한 불쾌감을 줄 수 있는 것이 시선의 힘이다. 게다가 이 시선의 폭력은 법적 제재조차 받지 않는 면죄부도 갖고 있다. 약간이라도 특이한 사람을 보면 끈적한 시선이 그의 움직임에 들러붙어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보통 이렇게 이야기 한다. "눈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어요."
이렇게 라도 알았으면 이제 좀 잘 사용해보자.
3. 장애
가이드 분들을 보고 생각난 영화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었다.
장애를 가진 조제와 헤어지는 남자친구를 욕했다. "저런 나쁜새끼." 나는 눈물을
훔쳤다. 그 후에 우연히 듣게된 작은 설명은 내 뒤통수를 때렸다.
남자친구는 조제를 동정한 것이 아니다. 동정해서 사귄것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여자아이와 사귄 것이다. 평범한 여자 아이와 헤어지는데 그 여자를 동정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왜 이 남자 주인공은 보통 연인의 헤어짐에서 욕을 먹어야 하는가. 그리고 난 왜 이 남자를 욕해야 했는가.
난 정말 진정한 장애에
사로잡혀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4. 끝
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 했지만, 어둠은 정복해야 할 대상도
아닐뿐더러, 절대 정복 할 수도 없는 곳이다. "위대한 불의 발견이 어둠의 정복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그 횃불을 뒤로 돌려보라.
조금 전까지 환하던 그 자리는 횃불이 사라진 지금 어둠만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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