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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어스름한 새벽.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조용히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눈이 떠진다. 방금 잠에서 깬 사람의 정신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생생한 느낌이다. 몇 시인지 시계를 보려고 핸드폰으로 손을 가져가려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몸을 일으켜보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가위에 눌린 것이다. 한참을 낑낑대다가 스르르 눈이 떠졌다. '이미 한번 뜬 눈을 또 다시 뜨다니.' 이런 이상한 상황에 대한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핸드폰을 잡을 수 있게 된 손을 보고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칠흑 같던 어둠 속에 익숙해지려고 애쓰는 순간 창 밖이 점점 검푸른색으로 변한다. 늦은 새벽이 찾아오는 모양이다. 가슴은 아직 두근거리고, 입안은 바짝 말라 있다. 잠시 동안 내 것이 아니었던 내 몸을 하나하나 사용해 본다. 손가락을 쥐었다 펴고, 팔을 빙빙 돌려보고, 발가락을 벌려보고, 마지막으로 "살았다." 라는 말을 내뱉음으로써 혀도 움직이는 사실을 확인 한 후 물을 마시러 거실로 걸어갔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날, 아마도 여름.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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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이라면 L.I.S. (Locked in syndrome) 라는 생소한 병명을 듣는 일은, 살면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이런 병에 걸렸다는 소리를 듣는 일은 그보다도 더(아마도 훨씬 더) 적을 것이다. "당신은 39세이고, elle지의 편집장 입니다.", "당신은 L.I.S. 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눈을 깜빡이는 일 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평생 한번 들을까 말까 한 말들을 두번이나 들었으니, 아마도 장 도미니크는 엄청나게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닐까 싶다.

L.I.S.에 걸린 사람에게 운이 좋다고 말하는 나를 비난하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의 삶에 수긍한 장 도의 삶을 읽으면서, 이 양반이 그리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Matrix의 모피어스가 건넨 파란색 약을 먹은 듯한, 환상 속에서 홍콩 거리를 누비는 그의 모습은 진정 행복해 보였다. 곧 빨간색 약을 먹고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그 때도, 그는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늘씬한 갈색머리 여인의 따뜻하고 보드라운 육체 곁에서 정상인으로서의 마지막 잠을 자고 눈을 떴으면서도 그것이 행복인지도 모르는 채 오히려 툴툴거리며 일어났던 그 아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한단 말인가.
-잠수복과 나비, 160p

만약 그 날 새벽에 장 도미니크가 나처럼 가위눌림을 경험했다면, 적어도 정상인으로서의 마지막 아침이 행복한 아침으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자신의 몸이 움직인다는 것에 대한 감사로 가득한 하루 말이다.  어쩌면 아침의 투덜거림 때문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일 아침은 꼭 내 몸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겠다." 라고 다짐해도 소용없다. 다음날 찾아오는 아침 또한 어제의 그 몸일 뿐이다.


어김없이 계산된 말투로, "점심 맛있게 드세요." 라고 말한다.

책에서는 간간히 이런 냉소가 느껴지지만, 비관이나 절망은 읽을 수 없다. 이런 책을 읽고 나서 그런지, 내가 쓰고 있는 지금 이 글도 약간 시니컬 한 장 도의 성격이 닮아있는 것 같다.

꼭 생산보다 소비가 빠른 것은 아닌 듯 하다. 나는 보통 책 한쪽을 읽을 때, 평균적으로 눈을 네 번 정도 깜빡인다. 장 도가 눈을 네 번 깜빡이면, 짧은 단어 한 개가 만들어진다. 이 책을 만들기 위해서 눈 한쪽을 깜빡 거린 수를 헤아린다면, 나는 오만 페이지의 문서를 읽어 내야 한다. 쉽게 읽을 수 없다. 한자 한자에 들어간 정성을 생각하면 절대 쉽게 읽을 수 없다.


캥거루는 벽을 넘었습니다,

동물원의 벽을,

하느님 맙소사, 벽이 어찌나 높던지요,

하느님 맙소사, 세상은 어찌나 아릅답던지요.

- 잠수복과 나비, 172p

가위에 눌린 후 아주 잠시나마 자유로운 몸에게 감사했지만, 아직 이 노래를 느낄 수 없다. 자신의 몸속에 갖히게 된다면 느낄 수 있을까.

Posted by onion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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