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올 때 까지만 해도, '집에가면 이거 꼭 해야지' 라는 생각을 갖고 들어간다. 하지만 막상 집 안에 들어가면 남는건 "집에오면 내가 뭔가를 하기로 했던거 같은데.." 라는 생각 뿐이다. 어딘가 간질간질 하긴 하는데, 막상 긁으려고 보면 어디가 간지러운지 모르는 이 상황. 참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 해결책을 찾아보지만, 언제나 적당한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영화는 설경구의 이런 간지러움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이 글은 한국영화 <<싸움(2007)>> 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글이 영화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될 수 도 있지만, 영화의 내용을 조금도 알기 싫으신 분들 에게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준 on20.net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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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했나? 아니 그 반대였나? 잘 기억이 나진 않는다.
남자와 여자의 싸움이다. 일반적인 남자와 여자의 싸움을 상상해보자. 시장통에서 머리채 잡아당기며 소리를 지르는 남자에게 끌려가는 여자. 그리고 길거리에서 소리지르는 여자에게 하이힐로 맞고있는 남자가 생각난다. 둘 중 어느쪽을 생각하더라도 추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추하디 추한 모습을 영화 "싸움" 에선 어떻게 그려나갈지, 사뭇 기대를 하고 극장을 찾았다.
솔로인 사람들은 꼴도 보기 싫었을 염장신으로 오프닝을 열더니, 영화는 갑자기 호러물로 변한다. 초반에 도끼로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니, 하드코어 즐기지 않는 분이라면 조심하길 바란다. 옆자리 앉으신 여성분은 하드코어를 별로 즐기지 않는 분이셨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머리에 도끼를 달고 소리치는 모습은 굳이 없어도 감독의 의도가 전달되었을 텐데 말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감칠맛 난다. 설경구야 말할 필요없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김태희 또한 제대로 했다. 일전에 <중천>에서 보여준 그 어설픈 선녀아가씨는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그 외 전수경씨가 조연으로의 역할을 잘 해주어 영화의 모자란 2%를 살려주었다.
영화 자체는 데이트용으로 제격이었다. 사귄지 얼마 되지 않은 커플에게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지만, 싸울만큼 싸웠다 라고 생각되는 커플이 보고 나와서 카페에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운다면, 아마도 아침고요 수목원의 꽃만큼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솔로인 나는 그냥 옛날 생각만 났다. 남자와 여자가 다툰다면, 그 원인은 대체적으로 남자에게 있다. 문제는 남자가 이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설령 자신이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인정하려들지 않기 때문에 상황이 심각해지는 것이다. 사실 영화속 두 사람간 싸움의 원인도 남자의 화법에 있다.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사람 신경 살살 긁는 것이 "니 나랑 다툴래?" 라고 시비거는 격이다.
나는 그랬다. 그저 지기 싫어서 여자친구와 작은 말싸움 한번 져본적이 없다. 더 커지면 크게 싸울 것 같아서 여자친구가 져준 것 이겠지만. 그래도 그 때 내가 몇 번 져주었더라면 여자친구는 나에게 훨씬 더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남자는 여성에 비해 비교적 논리적이다." 라는 말엔 조금 동의하지 못하겠다. 비록 나도 남자이고, 논리따지는거 좋아한다. 논리를 내세우며 주장하지만, 싸움으로 진행되면서 그 잘난 "논리" 는 결국 억지로 변한다. 영화 속 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논리를 세우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하지만 결국엔 소리지름과 억지로 끝맺는다. 여기서 여자가 도발을 했든지 안했든지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서로 말하는 언어가 다른 상황에서, 대화를 하기 위해선 둘 중 하나가 이해를 해야 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조금 더 논리적이다' 라고 생각하는 남자가 차분히 말하지 못하고 감정만을 내세운다면 그게 어딜봐서 '논리적인 행동' 이라는 것이냐.
싸움의 끝은 냉전 아니면 화해다. 냉전도 화해도 아닌 이 영화의 엔딩이 좋았다. 어찌보면 "에이 저러다가 다시 결혼해서 잘 살겠지" 라는 결과 예측이 뻔한 영화였기 때문에 이런 결말이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성격차이로 인한 싸움만을 보여준다. 확실히 집착과 의심에서 오는 싸움이 중간에 끼어들었다면, 아마 이 영화는 본격 멜로물로 바뀌고, 변호사 임하룡의 승리로 끝나지 않았을까.
영화 정보를 찾아보다 우연히 알게되었는데, 노영심씨가 음악작업에 참여했더라. 사실 좀 미안하긴 하지만 기억속에 남아있는 음악은 하나도 없다. 굳이 또 극장가서 보는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나중에 DVD 나오게 되면 단지 음악 때문이라도, 다시한번 봐야겠다.
시계추가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시계추가 소화기가 되는 영화다. 시계추는 간지러움을 긁어주는 효자손이 되니, 집중해라. 그리고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김태희 남자 후배는 그냥 무시해라. 필요없는 접속사 같은 존재이니.
덧. 시사회지만(무료지만) 좀 투덜거려야 하겠다. on20 대표님에게 F1, F2 라는 좌석을 지정받고, 사이드일거 같아 조금 걱정했었다. 그리고 극장에 들어가보니 이건 걱정할 정도가 아니었다. 벽 바로 앞에 의자가 있어서 뒤로 1도도 기울어지지 않는건 이해할 수 있지만, 스피커에 스크린이 가려서 보이지 않는것은 도저히 참을 수 가 없었다. 다행이도 F7,F8 좌석이 비어있어서 그리로 이동하여 영화를 관람하였지만, 빈자리가 없었더라면 역시 "예민결벽 과다집착형 새가슴 증후군" 인 나도 영화보는 내내 불편하였을 것 이다. F1좌석을 비롯한 모든 1번 좌석은 정말 혹시라도 내가 브로드웨이 시네마를 찾을 때 가 있다면 절대 피해야 할 좌석으로 낙점하겠다.
덧2. 위에 조금 불평거렸지만 장소를 대관해준 브로드웨이 시네마에 감사드리고, 좋은 자리에 초대해주신 on20 관계자분들께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