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멜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저 말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 역시 의미론적 관점에서는 설명할 수없지만, "마시멜로 한다." 는 저급하거나 유치하지 않은, 그러나 공감할 수 없는, 그럼에도 꽤 인상적인 문장이다. 물질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개념을 형상화 할 수 있다는 점으로 인해 나는 너를 사랑한다. 라는 심오한 문장에 쉽게 접근 할 수 있다. 이해도는 어쨋든 이해하는 사람의 몫이지만.
2.
대중문화에서의 사랑은 심심치않게 찾아볼 수 있다. 김연우 라는 가수는 자신의 두번째 앨범에서 재회, 만남과 그리움 그리고 이별을 불렀다. 김연우의 노래나,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말하는 유지태의 울먹이는 얼굴. 이런 사랑들은 감성적이고, 또 매우 경험적이다. 그래서 쉽게 공감이 간다.
이 책은 경험적이지만, 매우 철학적이다. 철학! 철학적이지만 그만큼 공감이 되는것은 사랑 이라는 단어가 매우 철학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사랑 이라는 단어가 왜 철학적인지 궁금하면, 이전에 만나던 연인을 생각하며 내가 그사람을 좋아했는지 사랑했는지 정의 내려보면 자답이 조금 쉬워지지 않을까.
4.
두번째 읽으니 완전 새로운 책이 되어 있었다. 불과 1년 사이에 내 생각이 바뀌었든, 책의 내용이 바뀌었든 둘중 하나겠지.
버스안에서 읽더라도 그다지 창피하지 않은 연애소설중 하나인 이 책을 버스에서 읽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어쩌다 사랑에 빠졌을까.
양파맨님, 소고기를 좋아하시는구나 ㅎㅎ (으응?)
지금은 "혼자만의 사랑(?)"에 빠져있어서 '사랑'에 대한 느낌을 잘 모르겠어요. 아직 저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다음에 "같이하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사랑'에 대한 느낌을 좀 알 수 있을까요?ㅋㅋ 그러고 나서, 저 책을 읽게 된다면.....?ㅎㅎ
따뜻한 캔을 사이에 두고 맞닿은 두 손이 어색해서 앞뒤로 흔들던 그 때. 계단을 내려오며 대답 대신 내 팔짱을 꼈을 때, 놀란 마음과 팔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나도 몰래 슬쩍 빼버렸던 그 때. 매번 문 밖과 문 안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인사를 하다가, 처음으로 같이 지하철 문이 닫히는 걸 바라보던 그 때.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감정들을 하루에 세 번이나 경험한 날.
그 날, 2008년 3월 30일. 이제 봄 이라고 불러도 좋을 3월 말. 떠나기 아쉬운 겨울이 여운을 남겨놓았는지. 아니면 오전 내내 내린 봄비 탓 이었는지. 아니면 낙산공원의 고지대 탓이었는지. 유난히 추운 날 이었다.
"그날엔 꼭 이런 말을 해야지." 라고 마음 먹은 것이 일주일 전이었나?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지." 라고 마음먹은 건 어제였나, 엊그제였나. 너와는 친구가 좋은지 애인이 좋은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지금 우리 사이가 친구인지 애인인지 잘 모르는 어중간한 상태에서. 무엇인가 꼭 말을 해야겠다고 다짐한 이유에는 별로 거창할 것도 없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남녀를 봤다. 내리자마자 남자의 팔짱을 끼는 여자. 내리자마자 여자의 손을 잡는 남자. 꽤 비슷하다. 그런데 내리자마자 어색한 손을 어찌할 줄 몰라 주머니에 쑤셔 넣는 남자와 핸드백을 두 손에 꼭 쥐는 여자가 있다. 내리자마자 서로 약속이나 한 듯, 그 둘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걸어간다. 걷다 보면 손이 스치는 정도의 거리는 그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한다. '오늘 소개팅을 했을까? 예전부터 알고 지내는 친구일까?' 두 사람의 뒷모습에는 분명 서로에 대한 호감이 보이는데, 아직 다가가지 못함의 아쉬움이 묻어난다. 문득 다른 사람의 눈에도 너와 난 그렇게 보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빨개졌다.
너와 걸을 때 손이 스치면 잡아주고 싶고, 너를 안아주고 싶고, 너의 얼굴을 잡아당겨주고 싶고, 너희 집 앞까지 바래다 주고 싶고, 네 귓가에 대고 속삭이고 싶고, 너에게 아이스크림도 떠먹여 주고 싶고, 내 문자메시지에는 하트도 넣어보고 싶고, 네 손 꼭 잡고 앞뒤로 흔들면서 산에 오르고 싶었다. 친구에게는 어려운 이런 일들이, 연인에게는 너무 사소해서, 당연한 일이어서, 그래서 그랬나 보다. 그래서 이야기할 마음을 먹었나 보다.
낙산공원 제 3 전망대로 향하기 전 발견한 벤치는 봄비를 피해 지붕 밑으로 들어 앉아있었다. 보란 듯이, ‘너에게 기회를 줄게.’ 라고 말하는 벤치에게, 그리고 곧 이 서울 땅 에서 잊지 못할 기억을 만들어 줄 벤치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는 없었다.
한마디를 꺼내기 위해서 너무 오랫동안 앉아있었나. 떨리는 몸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얼어붙은 입 때문이었는지, 어쨌든 알 수 없는 이유로 어젯밤 수 없이 되뇌던 말은 나오지 않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감 없이 더듬더듬 대기는 싫었는데, 매번 좀 화나는 일이지만 이런 일에는 언제나 내 의지가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선을 긋고, 사람 같지않은 사람을 그리고, 내 이야기를 하고, 멋지게 고백하려던 계획은 무산되었어. 내 얼굴은 벽 모서리에 바짝 붙어 있는데, 얘는 끝도 보이지 않는 저어기 어딘가에 얼굴을 붙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차라리 그냥 지금 이 상태가 나을까. 라는 멍청한 생각을 했을 즈음, 보라색이 된 너의 입술을 보고 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어. 알고 있었을 거야. 그 무거운 분위기를. 추운데,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은데, 아직 무엇인가 나오지 않아서, 그래서 조금은 더 기다려 보자 생각 한거지? 그래서 유난히 추위를 잘 타는 네가, 그 찬바람을 맞고 그 자리에 앉아서 입술이 보라색이 될 때까지 일어나자는 말을 하지 않은거야. 맞지? 아니라 해도 상관없어. 난 네 보랏빛 입술에서 "이제 그만 가자." 라는 말이 나올까봐 무서웠어. "그만 가자." 라는 말을 하는 네게 "잠깐만." 을 외치며 허둥지둥 내 할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 네가 저 멀리 벽에 얼굴을 붙이고 있다 하더라도, "이제 연애하자." 라는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더라도, 단지 "그만 가자." 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너무 고마웠어. 나에게 기회를 준 네가."
지하철이 들어올 때 날리는 차가운 바람에 뒤돌아 서며 널 기다리던 그 때. 가는 곳 마다 문닫은 음식점들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원망의 눈길을 보내고 돌아오던 그 때. 칼 바람이 불어 내 건조한 눈의 모세혈관을 확장시키고, 얇게 입은 옷 사이로 스며들어 체온을 앗아가던 그 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을 하루에 세번이나 경험한 날
그 날, 2008년 3월 30일. 이제 봄 이라고 부를 수 있는 3월 말. 점점 따뜻해지던 너의 그 두 손과, 서로 교차되어 있는 너와 나의 팔에서 느껴지는 온기. 그리고 지하철 안의 따뜻한 바람 덕분에 유난히 따뜻한 날 이었다.
오늘은 여자친구에게 3만권으로 인쇄된 잡지에 너에게 쓴 편지가 실렸어. 라는 말을 해 줄 수 있어 너무 기쁘고, 또 제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달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또 기쁜날입니다. 돌쟁이, 그리고 후에 40년 과거를 함께 돌아볼 수 있는 동반자분과 평생 행복하셔요. ^^
이성이든 동성이든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호감이 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인상이 좋아서, 또는 예쁘게 생겨서, 아니면 진짜 인간적으로 괜찮아서 느끼는 호감과는 조금 분류가 다른 것 이다. 호감이라고 칭하기 보다는 일종의 동경 으로 보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르겠다.
우선 남녀 구분 없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미술을 하는 사람이 좋다. 내가 만난 모든 미술쟁이들 에게는 뭔가 탁 꼬집어 말 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그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뭔가를 만들거나 하는 예술행위를 보고 있자면, 갑자기 "이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든다.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음. 이다.
미술을 하는 사람이 좋다. (이 문장에 굳이 '잘' 이라는 수식어는 붙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한가지 있는데, 이 미술 이라는 것이 단순히 그림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시절, 우연한 기회에 미술학과 학생들의 작업실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작업중인 학생이 보여주는 그 모습은 너무나 멋이 있어서, 정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번 지인의 부탁으로 미술학원으로 아르바이트를 간 적이 있었다. 찰흙으로 얼굴을 만드는데, 그 얼굴 모델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보수가 괜찮아서 바로 흔쾌히 승낙 하였고, 그 때 내 얼굴을 만들던 그 여고생을 난 아직까지 잊을 수 없다.
중학생 시절, 꽤 오랫동안 미술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몇 번의 수상 경험도 있었고, 그 당시에는 개인적으로 "꽤 잘 한다." 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지금 당장 그림을 그리라 요구하면 제대로 된 선 하나 그을 수 없다. (오랜 시간이 흐른 것은 이야기 할 필요도 없이) 이는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 라는 압박감에 따른 심적 부담감이 야기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상실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창의력 부족" 과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마디로 나는 예술행위를 하지 못 한다.
소위 말해서 예술인 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못 가진 것에 대한 집착과 대리만족이 아닐까.
이제 조금 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요리를 하는 여성이 좋다. 아니, 요리를 잘한다고 하기보다는 조금 헌신적인 사람이 좋다고 할까. 물론 재료가 있으면 이것저것 잘 만드는 사람도 좋다. 주방에 서서 양파에 칼질을 하고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냥 좋다. 하지만 이보다 내가 매력을 느끼는 부분은, 누구의 집에 우르르 몰려가면, 말없이 조용히 방에서 나가 무엇인가를 만들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쨘~ 하고 뭔가를 갖고 오는 그 모습. 그리고 "언니 제가 할께요. 아니 내가 할께." 와 같은 조금은 헌신적인 모습이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좋다." 라고 하는 남자들을 정말 많이 봐왔다. 이런 남자들의 대부분은 아마 "순전히 요리를 잘하는 사람" 이 아니라 주방에서 조금 헌신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이야기 한다고 생각한다. 좀 남성의 입장에서 말을 포장해보자면, "요리를 즐기는 사람" 정도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약 4년간 혼자 자취를 했기 때문에, 밥을 비롯한 아주 간단한 반찬정도는 만들 수 있다. 한마디로 요리를 못하는 편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여성이 좋다는 것은 집착이나 대리만족으로는 설명 할 수 없는 부분이고, 단지 난 순종적인 여성을 원하는 것이 아닐까?
다시 사람들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 뭐랄까. 쉽게 이야기 하자면 난 번역 일을 하는 사람이 좋다. 번역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종류는 굳이 가리지는 않는다. 책, 논문, 대사, 등등.
하지만 왜 그런지 난 이런 사람들이 좋으면서도 어렵다. 그러니까 쉽게 친해질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스스로가 느끼는 능력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런 사람들이 좋을까? 미투데이에 "미술, 요리, 번역에 대한 포스팅" 을 올리고, 한번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그 외국어 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는 것 같다. 외국어는 내가 잘 하지 못하는 수 많은 것 들 중 하나 이기도 하고, 정말 잘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 이기도 하다. 정말 잘 하고 싶은 것 중 하나로 외국어능력 말고, 글쓰기도 있는데, 나는 이 번역 이라는 일이 글쓰기와 외국어능력 두 가지 모두가 충족되지 않는 이상 제대로 하기 힘든 일이라 생각한다. 주변에 번역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몇 사람 있다. 정말 이 사람들은 에너지 가득하고 멋있다. 정말 닮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번역하는 사람들이 좋다. 알고있다. 모든 번역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지는 않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 내가 내리는 결론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칭해도 할 수 없다. 어찌되었든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은 그랬다.
내가 정말 이상적이라고 생각 하는 여성상은 미술을 하고, 요리를 즐기고, 또 마음 내키면 번역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이런 여자는 분명 한국에 많이 있다. 문제는 "이런 여성이 과연 나와 만날까" 이다. 이는 좀 현실적인 문제인데, 나는 좀 순진해서 연애와 결혼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이는 분명 상대도 마찬가지 일텐데, 자신이 결혼 할 대상이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능력 없는 사람이라면, 서로 맺어지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아무래도 좀 힘들지 않을까? 좀 더 쉬운 길을 찾기 위해 어서 빨리 노력해야겠다.
무슨 영화에서 나왔던 대사였는데 (영화는 별로였던걸로 기억)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 여자들이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숨겨진 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후훗 일견 맞는 말인듯
그러나 미대를 졸업하고 영상을 직업으로 하는 애인을 둔 저는 그런 걸 한번도 맛보지 못했다는. 풉-
낚시에 걸린거랄까; 그건그렇고 nc님 블로그에 첨 와봤네요
"당신이 초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떠한 능력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 중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것이 "독심술" 이라는 능력일 것이다. 어떤 한 사람이, 다른사람의 마음을 명확하게 알 수 는 없다. 단지 추측하고, 지레짐작 할 뿐인데,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에 대한 불신만 쌓여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독심술을 대신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잊고산다. 이는 자신의 속내는 털어놓지 않고, 남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만 알아내려고 하는 이기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조금만 더 솔직해 진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대화" 이다.
사람들은 보통 살아오면서 "저사람은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아주 어릴적, "부모님은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라는 의문을 시작으로 "저 친구는 나랑 놀고싶은 것일까?" 를 비롯해 뫼비우스의 띠처럼 생각은 돌고 돌게된다. 그러다 점점 나이를 먹고 이러한 의문점이 자신을 매우 괴롭힐 때가 있는데, 그 것은 바로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이성과의 관계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어느순간 좋아진 감정이 생기고부터, 호시탐탐 그(그녀)의 행동만을 살피고, "저 아이는 어떤 이성을 좋아할까, 사귀는 사람은 있을까, 어떤 색, 어떤 음악, 어떤 책을 좋아할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저 아이도 날 좋아하고 있을까?" 기역자 벽의 모서리에 코를 기대고, 고개를 슬쩍 앞으로 숙이기만 하면 상대가 있나 없나 알 수 있는 그런 벽에 서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가슴 졸이고 있는 상태. 이런 상황을 끝으로 행동에 나선다. 아니 행동에 나선다는 것은 자신만의 생각일지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이미 많은걸 행동으로 보여줬을 지도 모른다. 아니, 내 수년간의 경험으로 보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고개를 앞으로 숙여보니 운좋게도 상대가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일이 잘 풀려 둘이 사귀게 된다고 해도 이러한 고민은 끝난게 아니다. "왜 이런 행동을 할까?, 날 정말로 좋아하긴 할까?" 와 같은 생각이 자신을 따라다닌다. 물론 "믿음" 이라는 강력한 보호막이 지켜주긴 하지만, 영원하지 못한것이 사실이다. 보호막이 약해질 때, 그 때 다시 보호막을 단단하게 해줄 것이 필요한데, 그것 또한 "대화" 이다.
대화 라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요즘같이 통신수단이 발달한 때에 누구나 쉽게 전화나 문자 등의 인스턴트 대화를 나눈다. 내가 이야기 하는 것은 이런식의 잊혀지는 대화가 아닌, 서로의 눈을 보면서 상대방의 눈에 내 말의 기록을 남기 듯 하는 그런 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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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맨님, 소고기를 좋아하시는구나 ㅎㅎ (으응?)
2008/10/02 01:47지금은 "혼자만의 사랑(?)"에 빠져있어서 '사랑'에 대한 느낌을 잘 모르겠어요. 아직 저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다음에 "같이하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사랑'에 대한 느낌을 좀 알 수 있을까요?ㅋㅋ 그러고 나서, 저 책을 읽게 된다면.....?ㅎㅎ
아이고; 슈터옹 혼자만의 사랑에 빠지시다니요.
2008/10/05 22:59곧 좋은 일이 생기실 거라 믿고 또 믿습니다.
곧 같이 하는 사랑에 빠지실 거에요. 한발짝만 걸어보세요!
히히 책도 한번 읽어보세요. 재미있습니다. ^^
블로그가 가장 쉬웠어요. 재미없어요. -짱-
2008/10/03 16:12블로그 하긴 하는구나. ㅋㅋ
2008/10/05 22:59